알면 알수록 재밌는 한국어와 한국문화
④ 복잡미묘한 한국어 '느낌' 표현 _ 시원하다
2024-08-19 편집인 427

 우리집 아이들은 과장을 조금 보태어서 눈만 마주치면 하는 말이 있다.

   “등 긁어주세요.”

 처음에는 등에 땀이 나서 땀띠라도 났나, 벌레가 물었나 싶었는데 하도 여름이건 겨울이건 일상적으로 하는 말이라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긁어주는 것이 일상 아닌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정말 가렵다면 옆에 있는 아무에게나 긁어달라고 부탁하면 될텐데도 꼭 남편과 내게만 긁어달라고 하는 것이 가려움도 선택적인가 보다.


  하루는 아이들에게 “너네는 왜 엄마 아빠만 보면 등을 왜 긁어달라고 해? 정말 가려워서 그러는거야?”라고 물었더니 “엄마나 아빠가 긁어주면 가렵거나 답답한 것이 없어지고 시원해서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문득 궁금해졌다. 한국 사람들은 시원하다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얼음처럼 차가운 것은 아니지만 적당한 냉기가 있는 것을 만지면서도 “시원하다.”, 봄이나 가을에 혹은 여름날 그늘에서 “시원하다.”, 뜨거운 국물을 마시고도 “시원하다.”, 목욕탕에서 뜨거운 탕에 들어가서도 “시원하다.”, 고속도로에 차가 많이 없으면 “시원하다.”, 길이나 집 같은 공간이 넓으면 “시원하다.”, 말을 잘 하거나 생각을 머뭇거림 없이 잘 정하고 표현하는 사람을 봐도 “시원하다.”, 아픈 부위를 안마한다고 두드리면서 “시원하다.”, 가려운 곳을 긁고 “시원하다.”, 일이 잘 해결되면 “시원하다.”.


  하나하나 생각하고 보니 시원한 것이 참 많기도 하다.


  내친김에 표준 국어 사전에서 ‘시원하다’의 뜻을 찾아보았다.

    ① 덥거나 춥지 아니하고 알맞게 서늘하다.

    ② 음식이 차고 산뜻하거나, 뜨거우면서 속을 후련하게 하는 점이 있다.

    ③ 막힌 데가 없이 활짝 트이어 마음이 후련하다.

    ④ 말이나 행동이 활발하고 서글서글하다.

    ⑤ 지저분하던 것이 깨끗하고 말끔하다.

    ⑥ (‘않다’,‘못하다’의 앞에 쓰여) 기대, 희망 따위에 부합하여 충분히 만족스럽다.

    ⑦ 답답한 마음이 풀리어 흐뭇하고 가뿐하다.

    ⑧ 가렵거나 속이 더부룩하던 것이 말끔히 사라져 기분이 좋다.


 외국어에서는 이 많은 의미의 ‘시원하다’를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인터넷 지식검색을 해 보니 가장 먼저 눈에 띈 답변이 있다. ‘한 단어로는 번역이 불가능합니다. 동일한 표현은 없습니다. 풀어서 어감을 표현해야 합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어려워 하는 것이 "시원하다"와 같이 복잡미묘한 느낌에 대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사전적인 의미를 알고 있으면서도 상황에 따라 사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한국어를 가르쳐 줄 때 사전적인 의미를 설명하기보다는 적절한 상황을 제시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실제로 가렵지 않아도 엄마나 아빠가 긁어주면 마음이 개운하고 편안해지기 때문에 눈만 마주치면 등을 내밀며 ‘시원하게’ 긁어달라는 아이들. 애정을 듬뿍 담아 오늘도 아프지 않게 시원하게 등을 긁어 주어야겠다.



하주은 multiculturekorea.hj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