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날씨가 선선하고 좋아 아침마다 7살인 막내를 도보로 등원 시킨다. 매일 약 10분 거리를 아이와 손을 잡고 걸으며 주변 풍경도 구경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즐거운 시간이다.
우리집에서 막내의 어린이집까지 가는 길의 중간쯤에 편의점이 하나 있는데 작년부터인가 그 앞의 자투리 공간에 누군가가 고철을 갖다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냥 고철덩어리였던 것이 어느 날은 뼈대가 생기더니 점점 형태를 갖추었다. 그리고 몇 번의 수정을 거치더니 제법 그럴싸한 거북선 모양이 완성되었다. 내가 사는 곳은 지금은 창원 특례시에 통합되어 ‘진해구’로 명칭이 변경되어서 공식적으로 말할 때는 창원시라고 이야기하지만 벚꽃이 유명한 곳, 군항제가 개최되는 곳, 해군사관학교가 있는 곳, ‘진해’라고 하면 대부분 더 잘 알아주는 곳이다. 그래서인가 진해에는 유독 해군-그 중에서도 이순신에 관련된 것이 많다.
하지만 개인이 허락없이 만든 그 조형물은 민감한 사항이었는지 어느 날 ‘거북선이 아닙니다. 거북이입니다.’라는 설명문이 붙었고, 조금씩 조명을 철거하고 거북선 같아 보이는 장식은 걷어내어야 했다. 하지만 워낙 잘 만들어지고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커다란 조형물이었기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익숙했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등원하는 길에 아이가 깜짝 놀라며 이야기했다.
“엄마! 거북선이 사라졌어요.”
놀랍게도 정말 그 크던 모형이 하루아침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큰 걸 어떻게 치웠을까 크레인 같은 중장비를 가져와서 분해하고 옮기려면 적어도 몇 사람이 며칠동안 ... 이렇게 현실적인 생각을 하며 아이와 대화를 이어나가려던 그 순간,
“엄마, 거북선이 이순신 장군을 도와서 전쟁하다가 죽었나봐요. 그런데 죽으면 어디로 가는걸까요. 거북선이 들어갈만큼 큰 무덤이 있을까요.”
이런 엉뚱함이란.
여기서 나는 또 직업병이 발동하여 ‘죽다’라는 표현에 대해 아이와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겠구나 싶었다.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한 분이시지? 그리고 너보다 어른이셔. 그래서 우리는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서 존댓말을 쓰는 것이 좋아. 그래서 죽었다라고 하지않고 돌아가셨다라고 말하는 거야.”
아이는 다시 또 물어보았다.
“돌아가는거는 다시 간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면 어디로 가는 거예요? 죽어서 집으로 가는 건 아닐거고. 지금 이순신 장군이 살아 계신게 아니니 옛날로 돌아가는 거예요?”
“음...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뜻이 아닐까. 몸은 죽어서 사라지지만 우리가 그 사람을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실거야.”
“아~ 그럼 하늘나라로 돌아가서 지켜보다가 다시 땅에 오고 싶으면 비를 타고 내려오는 거구나.”
7살에게 아직 직접 접하지 못한 죽음의 개념과 그것의 존대 표현까지 알려주려니 참 어렵게 느껴졌다. 다행히 여기까지 이야기하는 동안 어린이집에 도착하였고 아이는 자기 방식대로 이해한 듯 하였다. 그 후에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은 어른에 대해 이야기할 때 ‘돌아가시다’라는 말을 정확히 구분하여 사용하는 것을 보면.
나는 2021년부터 외국인 학습자들이 쓴 글을 문법에 맞게 교정하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물론 성인이 쓴 글이기에 내용은 수준이 높지만 한국어가 서툴러서 표현은 아이들과 비슷한 경우가 제법 있어서 가끔 아이들에게 너는 이 표현이 맞는 것 같니 틀린 것 같니 라고 가볍게 말로 물어보며 확인할 때가 있다. 그러면 대개는 맞는 표현을 대답하곤 하는데 정작 왜 그게 맞다고 생각하는지 이유를 말해볼래 라고 하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게 맞으니까 그렇게 대답을 한다. 거기서 ‘왜’라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고 분석을 하기 시작하면 한국어학이 되고 문법이 되고 교정 작업이 될 것이다.
내가 아이와 나눈 대화도 그저 죽음의 개념과 존댓말의 표현이었지만 마침 비슷한 시기에 받은 교정 원고에서는 ‘안락사’를 주제로 개념과 찬반 의견을 모두 밝혀 적은 고급 학습자의 글이라 한국어 교육적 측면으로는 금기어와 완곡어의 개념. 그리고 과연 학문적 정의에서 ‘죽다’와 ‘돌아가시다’라는 표현을 어떻게 쓰는 것이 맞느냐로 함께 교정하는 선생님들과 때아닌 토론을 벌였던 것이 떠올랐다.
요즘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한국어는 알면 알수록 어렵다. 하지만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하주은 multiculturekorea.hje@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