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쓴이 소개
글쓴이 심연수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한국어교원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몽골 올란바토르 34번 학교 한국어 교사, 베트남 다낭 깜레 교육국 한국어 교사, 스리랑카 콜롬보 국립 도서관 소속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였으며, 대구사이버대학 한국어다문화학과를 졸업한 후에는 대구사이버대학교 서울 학습관 이민자 사회 통합프로그램 한국어 강사, 여주 근로자 복지센터 한국어 강사를 역임하였고 현재는 여주대학교 국제협력센터에서 한국어 강사로 근무 중에 있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선생님이 KOICA 해외봉사단원으로 스리랑카 콜롬보 국립 도서관 소속 한국어 교사로 활동하면서 느끼고 경험하였던 교사로서의 소중한 기억을 공유하면서 한국어 교사로서의 사명감과 책임감에 대해 멀티컬처코리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보고자 선생님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사 경험을 소개 합니다.
현재 여주대학교 국제협력센터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나는 이 자리를 빌려 한국어 교사로서 겪었던 소중한 경험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나는 코이카 봉사 단원으로 몽골과 베트남에서 한국어를 가르쳤다. 두 번째 파견지였던 베트남에서 갑작스러운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도 귀국을 하게 되었고 그 후 2021년 12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온라인 봉사단원으로 국내에서 온라인으로 스리랑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쳤다.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전례 없는 온라인 활동이라 모든 것이 낯설고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뜻밖의 환경에서 만난 스리랑카 학생들과의 한국어 수업 1년은 내게도, 그들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감동과 사랑을 안겨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2022년 스리랑카는 유례없는 국가 부도 사태로 대통령이 국민에 의해 추방당하고 나라 경제는 피폐해져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지경으로 나라 전체가 매우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전력이 부족 하여 전기 사용을 제한하는 제한 정전이 시행되어 인터넷 접속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질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정전으로 컴퓨터 접속이 어려운 경우 비싼 휴대폰 데이터를 써 가면서까지 온라인 줌 강의에 매주 빠짐없이 참석하는 성의를 보였다. 나는 그저 그들의 열정이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었다. 이런 그들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알찬 수업을 만들어 주는 일뿐이란 생각에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수업 준비를 했던 기억이 있다. 1년 동안 수업을 진행하며 내가 느낀 것은 그들에게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단순히 한국어를 잘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한국어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한국어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깊은 사명감과 책임감에 대해 고뇌하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내가 수업을 맡은 중급반 학생들은 모두 20대 여학생들로 한국문화, K-POP과 K-드라마에 심취해 있는 학생들이었다. 한국 가요와 드라마로 익힌 그들의 한국어 실력이나 표현력은 상상 이상으로 훌륭했다. 스리랑카라는 나라는 굉장히 보수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인터넷의 발달로 세계 여러 문화를 접촉하게 된 젊은이들, 특히 한국문화를 접하고 그 매력에 빠진 20대 젊은 여성들로 구성된 우리 반 학생들은 현실과의 문화적 괴리감에서 오는 답답함에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들의 고민은 내가 직접 해결하거나 도와줄 수 있는 영역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며 현재 상황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게 용기를 북돋워 주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학생이 내게 이런 말을 해 주었다.
“선생님 저는 일주일 2시간 온라인 한국어 수업을 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고 이 시간을 기다리며 한 주를 버텨내요”
그녀의 이야기에 다른 학생들도 동조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선뜻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답답한 현실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고 서로 공감하며 위로를 나누는 이 공간이 그들에게 숨구멍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들이 현실에 주저앉아 슬퍼만 하지 말고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 주며 그녀들이 사랑하는 한국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발판으로 삼아 보라는 조언을 하며 함께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가자고 했다.
그녀들에게 K-POP, K-드라마, 한국어는 단순한 노래와 춤, 드라마, 외국어가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깜깜한 현실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빛이었고 길을 잃지 않게 만드는 등대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그녀들과 온라인 줌 교실에서 서로의 아픔을 위로하며 한국어를 공부하던 코이카 1년의 봉사활동 기간이 2022년 11월 끝났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녀들과의 인연은 2023년 11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로부터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현재 그녀들의 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사뭇 달라져 있다. 방구석에서 떨쳐 일어나지 못하고 힘겨워하던 소녀들은 지금 한 명은 미국에서, 다른 한 명은 독일에서 자신의 꿈을 좇아 열심히 생활하고 있고 BTS 오빠들의 코디네이터가 되고 싶다던 또 다른 한 명은 스리랑카 유명 의류 회사에서 패션디자이너로 일하며 한국으로의 출장을 계획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어있다.
더운 나라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겨울과 눈을 한국에 와서 경험해 보고 싶다던 한 소녀는 외국인 한국 홍보 기자로 활동하다가 우수 기자로 선발되어 자신의 바람대로 2022년 12월 겨울, 한국에 초청되어 꿈에 그리던 겨울과 눈을 직접 경험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갔다. 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현재 그녀들은 반짝반짝 빛나는 멋진 삶을 살아가고 있다. 지금의 그녀들은 2022년 온라인 한국어 교실에서 마음껏 한국어로 한국문화를 이야기하고 자신의 고민을 나누며 서로의 꿈을 지지해주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들이 있을 수 있었다고, 그리고 이 모든 것은 한국어를, 한국문화를 사랑한 덕분이라고 이야기한다. 오늘도 그녀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 한국어 공부를 놓지 않고 토픽 시험에 도전하거나 한국 관련 소식들을 공유하며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스리랑카 20대 소녀들과 함께한 1년은 한국어 교사로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소중한 경험을 안겨 주었다. 그녀들과의 행복한 추억이 오늘도 나를 가슴 설레며 한국어를 가르치게 하고 있다.
김은섭 multiculturekorea.kes@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