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가족에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이사’이다.
결혼 후 첫째를 낳고 3년 동안은 분가(分家, Cadet Branch)하여 살다가 둘째가 생기자마자 우리 집 근처에서 사시던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하였다. 친정 부모님은 우리 가족을 위해 집을 새로 지으셨고, 드디어 이사를 한 바로 다음 날 예정일보다 좀 빠르게 둘째가 세상에 나왔다.
첫째 둘째 모두 아들이라 조용할 날이 없었지만 주택이라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고, 이후 셋째 아들까지 낳아 우리 집은 노령층이 많은 한적한 동네에서 명실상부 시끌벅적한 아들 부잣집이 되었다. 저출산, 소가족, 인구 소멸이 문제라고 연일 뉴스에 보도되는 시대에 우리 집은 아이 셋과 친정 부모님, 우리 부부까지 총 일곱 명의 다자녀, 대가족으로 세 아이가 모두 초등학생이 된 올해 초까지 함께 살았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노년에 내외만 있는 집이 많은데 적적하지 않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집이 살아있는 느낌이라 좋다고 하셨고, 우리 부부 역시 아이들의 양육 부담도 덜고 어른들과 함께 살다보니 말과 행동을 조심하며 서로를 존중하며 지낼 수 있어 좋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집에 항상 어른들이 있으니 불안하지 않았고 또 생활 속에서 예의와 배려를 배우고 언제나 자기들의 편을 들어주는 어른이 있어서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좋았다. 자연스럽게 웃어른을 대하는 자세를 몸에 익히고 매사 인사를 잘하는 밝고 예의바른 아이들로 자라났다.
그렇게 둘째의 나이만큼 친정에서 함께 살다가 올해 셋째가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우리 아이들은 1, 3, 5학년으로 세 명 모두 초등학생이 되었다. 첫째가 살짝 사춘기에 접어들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본인들의 분리된 공간을 갖고 싶어했고, 아파트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췄다. 아무래도 친정 부모님과 함께 살기로 계획하고 집을 새로 지을 때는 아이가 셋이 될 거라는 것을 생각도 못 하였던지라 아이들 모두에게 개인의 방을 만들어 줄 공간이 없었고, 고민 끝에 남편이 부모님께서 더 연세가 들기 전에 아직은 두 분이 자력으로 지내실 수 있을 때 분가를 해서 각자 지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이야기했다. 그 후로는 감사하게도 일사천리로 원래의 집에서 30분 거리에 집을 구매하고 드디어 분가를 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새로운 집을 반기고 각자의 방을 갖게 된 것에 들떠있었다. 바뀐 생활에 금방 적응하는 듯 했다. 하지만 주말만 되면 그 동네의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했고, 때론 할머니를 보러 집에 놀러 가자고 하였다. 어차피 30분밖에 안 걸리는 가까운 거리라서 이사 후에도 자주 친정으로 가곤 한다.
아이들이 함께 살 때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라거나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할 일이 없다 보니 처음에는 “다녀왔습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였다.
그러다 문득 본인들 생각에 이상한지 내게 물어보았다.
“엄마, 우리는 이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지 않으니 인사를 어떻게 해야해요?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하려니 뭔가 거리감이 느껴지고 자주 못 만나는 느낌이 들어서 어색해요. 어차피 1주일 내로 다시 올 건데 다녀왔다는 인사가 맞지 않아요? 이사를 했지만 여기도 우리가 태어나고 오래 살았던 우리 집이잖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우리 가족이잖아요.”
한국에서 흔히 인사를 할 때 사용하는 ‘안녕하세요’의 ‘안녕’은 고유어가 아닌 한자어로 ‘편안할 안(安) 편안할 영(寧)’-탈이나 걱정없이 편안한 상태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이다.
외국인들이 대부분 한국어를 공부할 때 한국 문화편에서 가장 먼저 배우게 되는 것이 한국의 인사법인데 가장 보편적으로 익히게 되는 인사가 “안녕하세요.”이다. 그저 영어의 Hello, 중국어의 你好, 베트남어의 Xin chào로 어렵지 않게 넘어가는 인사말인데 토종 한국인인 우리 아이들에게는 상황에 따라 그 인사 속의 감정의 거리가 느껴지는가 보다.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닌지라 아이들에게 본인들이 편한대로 하지만 느끼는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면 될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그 후 아이들은 친정에 가면 본인들의 방식대로 인사를 건넨다.
가끔은 “안녕하세요.”, 혹은 “다녀왔습니다.”, “사랑합니다.”, “식사하셨어요?”, “잘 지내셨어요?”, “날씨가 너무 더워요.”
어떤 식이든 만나서 반가운 마음, 상대방이 잘 지내는지 안부를 묻고 걱정하는 마음을 담아서 표현하면 그것이 맞는 것이 아닐까?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수업을 할 때 교재에는 지면 관계 상 정말 짧은 한두 가지의 표현만 나와서 그것만이 전부인 양, 정답인 것처럼 알려주게 되지만 실상은 너무나 다양한 표현들이 많아서 나는 매번 덧붙임으로 표현들을 알려주곤 한다.
한국인이라 당연히 알고 있는 수많은 것들을 외국인 대상 수업에서 잘 녹여내고 어렵지 않게 전달할 수 있는 노하우를 가지게 되는 것이 다 경험이고 노련한 한국어 선생님이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아이들과 함께 배워가고 성장해가는 중이다.
하주은 multiculturekorea.hje@gmail.com